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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아침 출근길... 햇볕이 너무 좋고 기분 좋은 날씨다.

 

아침 7시 30분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도로가에 주차하는데 마침 딱 한자리가 비어있다. 운이 좋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주차를 하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침을 일찍 시작한 나에게 시원한 커피 한잔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회사 근처에 커피숍이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 시간에 문을 연 곳은 딱 한 곳이다. 

그곳은 내가 보아온 몇 년 전부터 항상 이른 아침에도 문이 열려있는 가게였다.. 

사장님 또한 아침인데도 밝은 얼굴로 오는 손님 한분 한분 인사를 해주신다. 세상에 감사한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문을 열어주셔서 아침을 맛있는 커피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커피숍 사장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침에 몇 시에 문을 여는지 여쭤보니 6시 50분이라고 하셨다.. 역시 성공하는 마인드란 이런 거구나.. 

세상에 감사한다는 마음이 이런 거구나...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니 아침부터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이후 그동안 막연히 궁금해하던 것들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되어가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세상에 감사하는 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순간이.. 나 자신에 대해 대견함과 스스로 감사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정말이지 내 마음이 달라지겠다 생각한 뒤로 나의 생각대로 일들이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마치 연극에 암전이 되었다가 밝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신기한 경험들이다..

 

10대, 20대, 30대를 지나오면서 나의 힘듦과 어려움들이 주변에 있지 않고 나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온 시간들임을 알게 된 순간을 맞이했다. 나의 삶이 왜 그렇게 흘러왔는지 그땐 알지 못했지만 지금 한걸음 떨어져 보니 아... 그때 이러려고 그랬었구나.. 나의 모든 순간들이.. 경험들이... 다 달랐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려고 한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19살 때 법무사 사무원을 시작으로 캐셔, 카드서비스센터, 핸드폰 액정 생산직, 그리고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지금의 IT분야까지.. 다 달랐다고 생각했지만 하나하나가 나의 인생에서 깨우침을 주기 위한 시간들이었음을 알게 된 것.. 

직장 생활을 시작한 초년생 시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험담을 했었고, 결국은 나 자신 스스로의 내뱉은 말로 인해 나 스스로를 공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 뒤로 나는 나의 같이 일하는 동료의 험담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일부의 금액으로는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간식을 사놓는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이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있지만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임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닌 나와 그저 결이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그 사람의 인생에 한 부분의 시간을 스쳐 지나가는 만큼 그 사람의 인생에 열정, 냉정, 쉼표인 순간 중 어느때  내가 스치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카드 서비스 센터에 근무하면서 여러 종류의 진상 손님을 만났었다. 물론 친절한 손님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나 자신이 회사의 얼굴이며, 회사를 대신하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응대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핸드폰 액정 생산직에 일하면서 방진복을 입고 에어 샤워를 거처 클린룸까지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화장실도 내가 가고 싶을때 가는 것이 아닌 보고를 하고 순서를 기다려 가는 등 화장실도 내 맘처럼 쉽게 가지 못하면서,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직장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반찬을 주문하고 밥을 해서 먹는 직장을 다니면서.. 구내 식당이 있는 직장에 감사하게 되고.. 밥을 해주시는 여사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청소를 직접 하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있는 회사에 감사하게 되었다. 

인생은 이토록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일들이 넘쳐난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다만 나의 경험으로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좌절하기보다는 그 좋지 않은 일들이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가를 바라볼 수 있는 나의 마음의 시선이 달라졌다. 평탄한 삶을 살아 왔다면 알지 못했을 나의 삶에 또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를 정말 바쁘게 나의 일을 쉬지 않고 많은 일들을 처리했을 때 나 자신 스스로의 뿌듯함이 좋아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왔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랬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냐고 조금은 쉬엄쉬엄 하라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하루를 충실히 시간을 아껴가면서 살게 된 건 고등학교 이후부터였다. 난 중학교 이전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상처여서 나 자신 스스로 그 기억을 지워버린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슬펐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아빠에 대한 기억은 항상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고 술에 취했을 무렵은 항상 오빠와 언니, 나는 아빠에게 혼이 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다. 

아빠가 술에 취한 날이면 세 형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항상 아빠는 술에 취해있었고.. 그런 아빠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을 즈음 오히려 더 편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술을 마시면 일을 잘 나가지 않으시던 아빠를 대신에 식당에 일을 하러 나가셨다. 

어렸을 적엔 학교 끝나고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있는 아이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운동회, 소풍에도 가족이 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가족 여행이라고는 양념통닭을 튀겨 무등산 계곡으로 한번 놀러 갔던 게 전부였다. 

예전에는 화목한 가정을 보고 그리고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많이 부러웠던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에게도 한번의 소중한 기억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그때를 기억해 보면 양념 통닭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때만 해도 흔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던 터라 그날의 통닭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겐 이런 소중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가...

 

중학교 무렵 2층 집을 담보로 엄마가 식당을 하셨다. 오랫동안 식당과 호텔의 한식 찬모로 일하셨던 엄마였고 음식만큼은 잘하셨기 때문에 가게는 잘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식당이 잘 되지 않았고 우리 집은 빚으로 어려워졌다.. 

그 무렵 나는 고등학교 진로를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중학교 성적이 중간정도밖에 하지 않았고 공부에도 별로 관심이 없던 터라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엄마와 언니는 인문계를 가라며 네가 실업계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했다. 

그래도 인문계라도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실업계는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가지 않느냐고.. 

글쎄.. 실업계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들었었고 오히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오니 주변에서는 중학교에서 중간정도 하면 거기선 전교에서 논다고들 그러길래 오히려 내가 거기 가면 1등이라도 하지 않겠나 싶어서 실업계에 가겠다고 우겼고 결국 나의 의견대로 실업계에 진학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공부를 못해서 오는 게 아닌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아직 시작하지 않은 친구들이 왔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고, 지금도 이 생각을 하면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당시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고등학교 납부금이 20만 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집안의 어려움으로 고등학교 납부금마저 제때에 내지 못하게 되면서 마음이 불안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 하고 하면 그땐 정말 그 돈을 꼭 받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마지못해서 시작한 공부였지만 하다가 보니 중학교 때 배우던 것들과는 다르게 컴퓨터, 타자, 주산 등 배워보지 못한 것들을 배우게 되고, 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했던 공부가 성적이 오르고 반에서 1등을 하고 전교 등수에 오르다 보니 공부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에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와 함께 같은 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졸업하기 전에 내가 저 아이보다 앞서 전교 1등을 해야겠다고 얼핏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이전 마지막 시험에서 나는 그 생각을 현실로 이루었다. 전교 50등에서 1등까지...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어도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납부금 걱정으로 장학금을 받기위해 열심히 한 공부가 뜻하지 않게 나의 적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다니..

 

고등학교 졸업 무렵 IMF가 터졌다. 그 당시 상업고 상위권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러리라 생각했다. 대기업에 서류에는 합격했지만 번번이 면접에 탈락했다. 그땐 경제가 어려워서라 생각했었다. 19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사회생활만 20년이 넘은 지금에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당시의 면접관이었어도 나를 뽑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나는 내성적이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 보였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도 다행히 운은 좋았던지 고등학교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다른 대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인턴사원을 뽑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고, 원래는 한 명만 정직으로 뽑는데 두 명의 인턴 중 평가가 더 좋은 사람이 정직원이 된다고 했다. 나와 같은 나이였던 그 아이는 그 대기업의 제품을 판매하다가 왔었고 나보다 제품에 대해서도 잘 알았으며, 밝고 명랑해서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 속에서 내성적이었던 나는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정직원을 결정하는 날 마지막 상담에서 나는 저보다는 그 아이가 여기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그 아이를 뽑아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누가 한자리를 두고 그렇게 양보하고 나온다는 말인가.. 그것도 생존 경쟁에서 말이다.

 

그곳을 나와 3개월을 집에서 바깥 외출도 하지 않고 박혀 지내다 보니, 믿을 수 없는 성격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렇게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었던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그 뒤 나를 만난 사람들은 과거의 나의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고 활달한 성격이 되었다.

 

그 이후 법무사 사무실에 사무원으로 취업을 해서 나의 첫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대학 진학 무렵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를 다닐 생각으로 실업계 특별 전형으로 조선이공대학교 야간에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반장(반장학금)으로 합격을 했다. 그렇지만 어려웠던 집안 사정은 풀리지 않았고, 나는 절반의 입학금을 내지 못해 진학의 꿈을 포기했다. 돈을 벌어 엄마에게 드리고 용돈을 타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또다시 대학 입학 시즌이 다가왔다.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꼭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원서를 넣었다. 앞으로 취업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보다는 전문대학이라도 나야 와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반장으로 조선이공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렇지만 절반의 입학금은 일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나아지지 않는 집안 형편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겨우 엄마께 이번 입학금만 마련해 주면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이번만 도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다. 낮에 회사를 다니고 밤에 공부한다는 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어서 그런지 너무 행복했다. 회사를 끝나면 걸어서 20분인 거리를 수업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납부금을 낼 수 없을 것 같아 악착 같이 공부했다. 그때도 여전히 번돈을 엄마게 다 드리고 나는 용돈을 타서 생활을 했다. 2년 동안 전장(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책만 구매했을 뿐이다. 4.5만 점에 4.47를 받았으니 정말 충실히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것 같다. 졸업식엔 학과 대표로 상장을 받았다.

 

예전에 법무사에 근무하면 등기소, 구청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러 하루 종일 걷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했다. 가장 먼 등기소를 갈 때면 1시간이 걸려서 버스에 시간이 남으니 요약본을 정리해서 가지고 다니며 공부했다. 법무사 사무실을 다니게 된 건 참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소장님도 참 많이 배려해주셨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예전의 법무사 사무실이 있던 자리에 한번 찾아갔을 때 그때 그곳에 법무사 사무실은 없었다. 아마도 법무사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은퇴를 하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참 고마웠던 분을 만났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3년을 다녔던 법무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시작할 무렵 나에게는 60만 원의 월급과 100만 원의 퇴직금을 합쳐 160만 원이 수중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공무원 학원이 몇 개월을 한꺼번에 결제를 하면 할인행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5개월을 결제하고.. 

학원비를 결재하고 집안에 일이 있어 80만 원을 드리고 나니 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기를 5개월.. 다시 학원비를 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뾰족한 수가 나질 않았다. 공부를 그렇게 해도 영어에 기초가 부족했던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고 다시 직장에 취업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중견 여성패션 의류 업체에 입사하였고 2년을 열심히 돈을 벌었던 거 같다. 물론 그때에도 번돈은 엄마께 드리고 용돈을 타서 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액정 공정에서 2년을 근무했다. 

그 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IT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직업훈련원 교육과정을 알아봤다. 개발자 교육은 없고 웹디자인 교육만 있었다. 그래 그거라도 시작해 보자. 

그리고 지금까지 IT 쪽 일을 해오고 있다. 근무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table코딩을 시작으로 웹표준, 웹접근성을 독학으로 웹퍼블리셔로 전향했다. 개발 쪽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웹기획 쪽을 보게 되었다. 웹디자인, 웹퍼블, 웹기획, 산출물, 개발도 흐름정도는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이란 그저 그런 우연은 없는 것 같다..

 

그때 내가 원하던 개발자교육을 받고 개발자가 되었다면, 나는 지금에 이를 수 있었을까... 그때 개발자 과정이 없었고 웹디자이너로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되려고 세상이 나의 인생에 길안내를 해주었던 것은 아닐까... 

고등학교 졸업시절 취업했던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고등학교 졸업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대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지 않았나.. 

20대의 나의 삶은 목표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열심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에 와보니 나의 20대에게 지난날의 나에게 지금의 이 시간을 준 것에 정말 감사한다.

 

인생이 지금 힘들다고 낙담하고 있는가... 그러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이 일이 지나고 났을 때의 나를.. 나의 지금 이 힘듦이 나에게 어떤 밑거름으로 남아줄지.. 같은 인생을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것인지 불행하게 살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와 반이나 남았네의 관점에서 처럼 말이다. 

10대 20대의 인생이 힘들다면.. 앞으로 나에게 올 40대의 삶이 지금의 나의 힘들었던 마음을 바탕으로 더 나아질 것임에 기대하며 지금의 나의 생각의 불안을 떨치길 바란다. 

인생은 지금의 나의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각도만 변경하더라도 그 힘듦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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